동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손진욱 부원장
불면증이란?
불면증은 의학적으로 자리에 누운지 30분이 지나도 잠이 들지 않거나, 자는 도중에 2회 이상 깨거나, 아침에 너무 일찍 깨거나, 자고 나도 통 개운하지 않은 현상이 하나 이상 있을 때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총 수면시간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총 수면시간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는 것은 인간에게 필요한 수면 시간이 4~9시간으로 그 편차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또 밤늦게 잠들고 아침 늦게 일어나는 소위 ‘올빼미 형’이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종달새 형’이 모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요컨대, 총 수면량이나 잠들고 깨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자고나서 다음날 얼마나 상쾌하고 개운하고 활기있게 활동할 수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인 것입니다.
3명중 1명은 일생동안 한번 이상은 불면증을 겪게 될 정도로 매우 흔합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1.3배 정도 많습니다. 65세 이상이 되면 65세 이전에 비해 불면증이 1.5배 정도 많아집니다. 한국에서는 5명중 1명이 주 3회 이상 불면증을 겪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불면증 환자 중 5%만 전문가를 찾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불면증을 병으로 생각하지 않거나 아니면 병원을 찾아도 별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불면증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잠을 못자면 피로가 회복되지 않아서 낮에도 피곤하고 졸립니다. 여러 가지 인체기능이 약해져서 갖가지 신체적 질환이 발생하거나 기존에 있던 질환이 악화됩니다. 잠을 못자면 기억력이나 집중력 등이 떨어집니다. 불면증이 오래될 경우 약 50%에서 나중에 우울증으로 발전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잠이 오지 않으니까 이로 인해 잠을 잘 목적으로 술을 자주 마시거나 무분별하게 약을 많이 복용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래되면 알코올 중독이나 약물중독 같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졸음과 피로는 현대와 같은 복잡한 사회에서는 교통사고와 같은 대형 사고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수면의 질과 양이 여러 가지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은 많은 연구 결과들을 통해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면 부족은 비만과 관계된 성장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체중이 증가될 수 있습니다. 또한 수면 중에는 일반적으로 혈압이 떨어지는데, 수면 장애가 이러한 정상적인 혈압 감소에 영향을 미쳐 고혈압, 심혈관계 질환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면 장애는 인슐린 사용 능력을 훼손하여 당뇨병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불면증의 원인
가장 흔한 원인은 정신과적 또는 심리적 문제입니다. 우울증, 양극성 장애(조울병), 불안 장애, 정신분열병, 성격장애, 신체화 장애 같은 각종 정신질환이 대부분 불면증을 동반합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생활 사건이나 상실에서 생기는 모든 스트레스와 이에 따른 불안, 우울, 좌절감, 분노 등이 모두 불면증의 원인이 됩니다. 둘째는 신체적 질환으로 갑상선 기능 항진증, 관절염, 만성 신장염, 만성 폐질환, 심부전증, 역류성 식도염, 파킨슨병, 천식, 통증, 가려움증 (피부병) 등이 흔히 불면증을 일으킵니다.
셋째는 임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약물들로, 중추신경흥분제, 스테로이드, 기관지 확장제, 항경련제, 항우울제, 항불안제 등의 복용이나 중단이 불면증을 가져올 수 있으며, 음주나 흡연도 문제가 됩니다.
넷째, 원인은 수면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행동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어쩌다 한번 생긴 불면증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여 잠을 자려는 과도한 노력을 하게 되면 과잉각성과 긴장 및 불안이 나타나 오히려 잠이 더 안 오고, 그러면 다시 더 걱정을 하게 되는, 일종의 악순환이 만들어져, 결국 불면증이 만성적으로 고착화되는 것입니다. 물론 불량한 수면위생, 예를 들면 불규칙한 수면일정, 지나친 낮잠, 카페인이나 알코올의 과잉 섭취, 취침 시간 직전의 과도한 운동이나 과도한 정신적 자극 등도 불면증을 일으킵니다. 여섯째 원인은 수면 중에 나타나는 비정상적 신체 운동입니다. 자는 도중 주기적으로 하지가 움직거려지는 ‘주기적 하지 운동 증후군’이나 무호흡 상태가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수면 무호흡 증후군’ 등이 그 예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해도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불면증을 ‘원인 불명 불면증(idiopathic insomnia)’이라고 합니다.
불면증의 유형
불면증은 증상의 지속 기간에 따라 일과성 불면증, 단기 불면증, 만성 불면증으로 나눕니다. 경의 변화나 마음의 상태(불안, 우울 등)에 따라 며칠 정도 잠을 잘 못자는 일과성 불면증은 아무런 치료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불면 상태가 3,4주 정도 지속되는 단기 불면증은 의학적 치료가 필요합니다. 만성 불면증은 불면이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인데, 이때는 아주 복잡한 양상을 띱니다. 만성 불면증은 대개 갖고 태어났거나 이전부터 갖고 있던 소질인자와 환경의 변화나 스트레스 같은 유발인자, 그리고 여기에 증상을 장기화 시키는 인자(술, 수면제 복용 등)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합니다. 따라서 치료도 매우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또, 불면증을 뚜렷한 원인이 발견되지 않는 일차성 불면증과 원인이 되는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발견되는 이차성 불면증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불면증의 진단
불면증의 원인과 정도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환자와의 직접 면담을 통한 자세한 수면력 조사와 정신과적 평가가 필수적입니다. 이때 같이 잠을 자는 사람으로부터도 꼭 자세한 정보를 얻어야 합니다. 지난 한, 두 주일간의 수면 상태를 일정한 서식에 맞춰 기록하게 하는 수면일지와 구조화된 수면 설문지 작성도 큰 도움이 됩니다. 아울러 불면증을 일으킬 수 있는 각종 신체질환 유무에 대한 진찰과 검사를 하여야 합니다. 특별한 경우에는 수면다원검사를 시행합니다. 수면다원검사는 수면 중의 호흡상태, 뇌파, 안구운동, 근전도(筋電圖), 심전도, 동맥혈의 산소포화도, 무호흡 등을 전기생리학적으로 기록하는 검사로 일반적 수면 구조와 상태, 각종 수면장애의 유무와 원인, 수면과 관련된 호흡장애 및 근육 경축이나 간질 유무 등을 알아보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불면증의 치료
불면증의 치료는 원인치료, 수면위생교육, 행동치료, 약물치료 등으로 나누어집니다.
불면증의 경우에도 원인이 되는 정신적 및 신체적 질환이나 그 밖의 요인들을 찾아내어 이를 해결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아울러 수면위생교육이 필요합니다. 불량한 수면위생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고, 이런 경우 잘못된 부분을 교정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권하는 건강한 수면 수칙 8가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불필요하게 (침대에)누워있는 시간을 줄인다. 잠이 오지 않는데 억지로 누워있으면 설 잠만 들며 자주 깨고 결국 수면 효율이 떨어집니다. 누웠다가도 잠이 오지 않으면 억지로 자려고 하지 말고 일어나서 무언가를 하는 게 더 낫습니다.
둘째,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난다. 우리의 몸은 24시간 주기로 움직임으로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면 잠드는 시간도 거기에 맞춰 조절이 됩니다. 따라서 주말이라도 늦잠을 자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셋째, 침실에서 시계를 치운다. 침실에 시계가 있으면 시간을 보면서 예정된 시간에 잠이 안 들면 어쩌나 하고 긴장을 하기 때문에 더 말똥말똥해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환자는 째깍째깍 시계 소리를 들으며 실망과 좌절에 빠집니다.
넷째, 술, 커피, 담배를 피합니다. 카페인과 니코틴은 각성 작용이 강함으로 수면을 방해하고, 술도 다소의 수면 유도 작용은 있으나 숙면을 방해함으로 결국 해가 됩니다.
다섯번째, 오후 시간에 적당량의 운동을 한다. 운동 후 6시간 정도 지나면 처음에 상승했던 체온이 떨어지고 신진대사가 저하되면서 수면이 유도되고 숙면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잠들기 직전의 과격한 운동은 체온 상승으로 오히려 수면에 방해가 됩니다.
여섯, 취침 전에 가벼운 음식을 먹는다. 배가 고프면 잠이 잘 오지 않기 때문에 취침 전에 가벼운 식사를 하는 것은 수면에 도움을 줍니다. 특히 따끈한 우유 한 잔이 좋은데, 우유 속에 함유되어 있는 트립토판이 수면 증진 효과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물론 과식은 금물입니다.
일곱, 편안하고 쾌적한 수면 환경을 만든다. 필요하면 귀마개나 눈가리개를 사용해도 좋습니다.
여덟,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낮 동안의 스트레스나 골치 아픈 일, 그리고 그에 결부된 부정적 감정들은 가급적 잠자리에 들기 전에 미리 해결 또는 정리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나 묵상으로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불면증의 약물치료
수면제 등 약물도 적절히 사용하면 도움이 됩니다. 요즘 나와 있는 수면제들은 내성이나 의존성이 별로 없고 효과도 좋아 단기 불면증에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수면제는 최소한의 용량을 필요시에만 복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3주 이상은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울이나 불안이 불면증의 주요 원인인 경우에는 항우울제나 항불안제를 쓰기도 하는데, 이때는 반드시 의사, 특히 정신과 의사의 진단과 처방이 필요합니다. 멜라토닌은 시차 등 수면주기에 혼란이 와 있는 경우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의사의 처방 없이 약국에서 수면 보조제라고 판매되는 항히스타민제나 비타민은 효과가 의심스럽고 부작용이 문제가 될 수 있음으로 피해야 합니다.
수면제를 먹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 주치의가 권고한 가장 낮은 용량으로 시작합니다.
2. 대부분의 경우 적정 사용기간은 2~4주입니다.
3. 복용기간이 더 늘어날 경우 수면에 문제가 있는 밤에만 제한하여 복용합니다.
4. 처방한 용량 이상을 복용하면 안됩니다.
5. 효과가 감소하거나 부작용이 나타날 경우, 주치의와 상담하도록 합니다.
6. 복용을 중단할 때에는 주치의와 상담하도록 합니다.
7. 술과 같이 복용하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술을 금합니다.
8. 잠을 잘 자기 위한 생활습관 교정을 병행합니다.
불면증은 매우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합니다.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만성화되거나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불면증에 대한 자가 치료나 의사의 처방 없이 약을 사용하는 것은 불면증을 악화시킵니다. 따라서 불면증은 원인에 따른 다양하고 전문적인 치료방법이 필요합니다. 매번 잠들기가 너무 힘들어 1시간 이상 걸릴 때, 잠을 자려고 하면 온갖 생각이 떠올라 잠이 안 올 때, 자다가 자주 깨고, 깨면 다시 자기 힘들 때, 또 너무 일찍 일어날 때, 자고 나도 잔 것 같지 않고 피곤할 때 이런 문제가 1개월이상 계속될 때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