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경남일보(http://www.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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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슬픈 우리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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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욱 (정신과의사, 경상의대 명예교수, 마산동서병원 부원장) 2014.03.14 00: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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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자살 소식이 들려온다. 자살이 남녀노소, 빈부 격차 및 신분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다. 인터넷의 자살사이트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함께 만나 동반자살을 하는가 하면 유명 연예인의 자살이 신화(神話)가 되어 청소년들이 모방 자살을 하는 소위 ‘베르테르 효과’도 있다고 한다. 자살이 사망원인 중 4위로 하루 평균 35명 정도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인 자살률은 도무지 줄어들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최근의 보도는 지난 20년간 자살률이 무려 3배나 증가했다고 전한다.
유독 우리나라에 자살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소외감, 절망감 및 무력감을 양산하는 사회구조가 문제가 될 것이다. 성장과 능률의 기치 아래 끝없이 벌어지는 비인간적 무한경쟁은 사람들을 옥죄고 있으며 여기서 탈락한 사람들을 솟아날 구멍이 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넣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바쁜 생활과 개인주의에 기인하는 대화의 단절, 즉 소통의 부재는 이해와 위로 및 지지를 받을 기회를 아예 박탈하고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사회가 총체적으로 도덕적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이다. 삼강오륜(三綱五倫)으로 대표되는 유교적 가치관이 급격히 붕괴되면서 이를 대체할 새로운 도덕 기준이 없어 사람들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몰라 혼란스러워한다. 이 혼란을 틈 타 돈이 최상의 가치가 되고, ‘부자 되는 것’이 인생 최고의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의 편안함과 현세에서의 행복을 추구하는 소위 웰빙(well-being) 바람이 모든 덕목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하여 직·간접 살인이 아무런 가책 없이 저질러진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껭(Durkheim)은 자살의 한 요인으로 소위 아노미(anomie) 현상을 지적한다. 그는 ‘행위를 규제하는 공통 가치나 도덕 기준이 없는 혼돈 상태’를 아노미라고 명명하면서 이런 사회병리가 노이로제, 비행, 범죄, 자살 같은 사회 부적응 현상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는데, 지금 우리나라가 바로 그렇지 않나 여겨진다.
따라서 자살 예방을 위해서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지나친 사회 경쟁구조의 완화,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가치관과 도덕성의 확립일 것이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자살이 ‘강 건너 불’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는 대한민국이라는 ‘자살공화국’ 호(號)를 함께 타고 가는 공동 운명체로서 타인의 자살과 예방에 적잖은 책임이 있고, 더 나아가 자살 충동과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는 잠재적 자살자이기 때문이다.
손진욱 (정신과의사·경상의대 명예교수·마산동서병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