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경남일보(http://www.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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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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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욱 (정신과의사, 경상의대 명예교수, 마산동서병원 부원장) 2014.02.21 00: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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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한 인기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이 종영됐다. 워낙 인기가 있어 사람들은 모이면 흔히 이 드라마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더러는 등장인물과 사건 전개에 대한 호오(好惡)가 서로 달라 열띤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가 이렇게 TV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드라마가 삶의 축소판이자 총집합체여서 누구든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부모에게서 태어나 양육되고 성장하며 대부분 결혼하고 자식 낳고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이 과정에서 부모, 형제자매, 배우자 및 자식들과 수많은 애증(愛憎)의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본능적인 내적 욕구와 이것의 충족을 막는 현실 사이에서 무수한 좌절과 이에 따른 불안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들 갈등과 불안의 대부분은 극복되거나 해결되지 못한 채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다.
대부분의 드라마는 이런 갈등구조를 다루며 인간 무의식 속에 깊숙이 들어 있는 소망(욕구)과 이에 관련된 불안을 은연중에 건드린다.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등장인물에 동화 또는 감정이입(感情移入)되어 그가 자신인 양 성공과 실패에 함께 웃고 운다. 그리고 드라마 속의 어떤 인물을 현실에서 미워했던 사람과 동일시하면서 마음 놓고 비난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다양한 긍정적인 심리효과가 나타난다.
우선 등장인물들을 통해 현실에서는 불가능했던 욕구충족의 기쁨, 즉 대리만족을 맛본다. 그리고 그동안 쌓였던 부정적 감정들이 분출되면서 마음이 후련하고 깨끗해진다. 이런 현상을 정신의학에서는 카타르시스(catharsis)라고 부른다. 또 드라마 속 유사한 상황을 보면서 자신의 내적 갈등과 불안에 대해 성찰하고 위안을 받으며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외에 드라마는 성숙한 인물과 건전한 삶을 보여주어 닮게 만드는 교육적 학습효과도 있다. 그러나 드라마가 주는 이런 긍정적 효과는 대부분 불완전하고 일시적이다.
한편 드라마가 주는 피해도 만만치 않다, 특히 드라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음주나 흡연, 폭력, 성행위 장면 등은 모방성이 큰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크게 미친다. 그리고 드라마와 현실을 혼동하여 생활에 지장을 주는 경우도 흔하다. 드라마 속의 화려하고 부유한 삶을 현실적인 것으로 착각하여 초라한 자기 모습에 실망하고 우울해 하거나 가족들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여 가정불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현실생활이다. 아무리 어렵고 고달프더라도 반드시 살아내야 하는 것, 그리고 당면한 모든 문제에 대한 실제적인 해결책을 갖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현실생활이기 때문이다.
손진욱 (정신과의사·경상대의대 명예교수·마산동서병원 부원장)